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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다이 시지에




  재봉사의 등장으로 마을은 무질서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예쁘든 밉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젊든 늙었든 상관없이 여자들은 모두 옷감과 레이스, 리본, 단추, 재봉실, 평소에 꿈꿔온 디자인을 가지고 서로 경쟁을 벌였다. 뤄와 나는 여자들이 가봉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흥분과 조바심과 가슴 저 밑에서 터져나오는 거의 본능적이라 할 욕망에 질색하고 말았다. 그 어떤 정치제도나 경제적 압박도 여자들에게서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아마도 모성애만큼이나 오래됐을, 옷을 잘 입고 싶은 욕망을 빼앗지는 못했다.

- p.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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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공식적인)문화대혁명 직후, 도시에서 중학교 교육을 받았다는 죄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기 위해 두메산골로 보내진 두 소년으로부터 시작한다.

 

차도, 시계도, 전구도 없는 산골에서 부모가 잘나빠진 지식층의 기득권자들인 의사라는 이유로 다시 도시로 나갈 수 있는 확률이 1천분에 3 정도밖엔 안 되는 두 소년은 산을 통틀어 하나 있는 재봉사의 집에서 그의 딸을 만나게 된다. 도시에서 온 교육을 받은 소년들과 산골에서 아버지로부터 글 읽는 방법과 재봉술을 배운 소녀가 만나 발자크를 비롯한 서양의 소설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여태 읽었던 것들에 비해 소설자체도 길지 않거니와 내용 자체도 어려움 없이 읽히는 소설이라 편하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점은, 좁은 산길에서 똥지게를 지고, 요강을 사용하고, 낙엽 따위를 태우고 남은 재에 고구마를 구워 먹는 등의 장면 등이 친숙하게 느껴진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마오쩌둥과 그 외 공산당원들의 저서와 순수학술서 외엔 독서는 물론 도서 자체의 소지조차 금지되어 있던 시대적인 상황조차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건 한국의 특수한 조건 탓이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참 감성적일 나이에 억눌려있던 청춘들이 감각적인 묘사로 가득한 소설을 만났을 때에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

 

, 워낙 얇은 소설인지라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려다보니 마땅히 길게 쓸 수가 없구나.

 

<아래는 내용에 관한 미리니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다 읽고 나서는 문득 예전에 보았던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각각의 시간을 살던 이들에게 시계와 달력, 매체 등으로 같은 시공간을 강요하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인간 내면의 감정과 여성,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묘사된 소설도 결국 도시를 중심으로 쓰여졌으며 이는 결국 교묘하게 욕망을 자극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장을 덮으면서는 위에 언급했던 다큐멘터리 속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생각이 많은 눈으로 TV속의 매력적인 여성을 보고 있는 원시종족의 딸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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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되는 장소가 어디일까 생각하면서 '용징'이라고 검색하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설 내에서 배경에 대한 묘사로부터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거대한 바윗 덩어리들과 뾰족한 산봉우리온갖 크기의 다양한 모양을 한 상등성이들 사이로 난 좁은 두멧길이 있을 뿐이었다.

 

그 도시에 발을 들여놓았던 유일한 서양인은 1940년대에 티베트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던 프랑스인 선교사 미셸이었다.


산간지대고, 티베트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는 중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되어 있으니 중국 서부의 평야지대가 끝나는 곳으로부터 찾아보기로 합니다.

 

정보를 토대로 비슷한 이름과 영어를 이용하여 찾아보니 비슷한 지명이 '융징'이 나오더군요.






중국의 행정구역은 성, 지구, 현, 향, 촌 5가지로 나뉘는데 '융징'은 현으로 분류되는 모양입니다.







위치는 대략 이정돕니다. 

대략적으로만 봐도 큰 도로들이 있는 평야지대가 끝나는 곳에 위치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 주인공들이 원래 살았던 '청두'시가 보입니다.




조금 확대해본 사진. 오른쪽 아래 보이는 청두시와는 600km거리에 있습니다. 





위성사진으로 보았습니다. 평야지대와 산간지대 사이에 있음이 확연하게 보입니다.




주인공들이 생활하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100km의 용징이었다고 했으니 가장 그럴싸할 곳을 찾아봅니다.


이곳을 기점으로 티베트는 서-남쪽방향이니 



여기 어딘가가 아닐까 하는 것을 끝으로 대강의 추적을 마칩니다.


책과 관련하여서 이동진님의 팟캐스트 '빨간책방' 121과 122화가 있어 들어보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