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걸까?"
영화를 먼저보고 원작 소설이 있다는 소리에 찾아보게 되었다. 소설은 스위스 베른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여인, 우연히 얻게 된 책 한 권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놓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레고리우스는 그의 고전어(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언제나 규칙적인 모습(적어도 외적으로는,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린다)으로 인하여 문두스Mundus라는 별명을 가진 고전어 담당 선생이다.
그는 베른의 에스파냐 책방에서 발견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우'를 만나기 위해 스위스를 떠나 포트투갈의 리스본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인물들과 사건에 관해 알아가면서, 그 모든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하고 또 자신에 관해 이해한다는 점이 큰 줄거리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매력적이었던 점은 그가 이동하는 경로의 구체적인 지명을 들어 과정이 단지 '기차 안'이게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각 지역에서마다 뭔가를 언급하진 않지만 말이다. 이는 지도를 쳐다보는 걸 좋아하는 이의 지극히 주관적인...
스위스의 베른Bern으로부터 프리부르Fribourg 로잔Lausanne, 제네바Geneva를 거쳐
프랑스의 부르캉브레스Bourg-en-Bresse, 파리Paris에 이르는 경로.
여기서 언급한 지명이 책과 일대일로 매칭되는 것은 아니나 경로상 큰 도시를 기준으로 적어보았다.
경로를 찾아보면서 재미있던 점은 '최적경로'로 설정을 하면 이 루트가 아닌 스위스에서 취리히Zurich, 독일의 만하임Mannheim를 통해 파리로 향한다는 점이었다.
개인으로는 이 루트에서 그레고리우스가 떠올리는 전처前妻 플로렌스의 밝고 개방적인 이미지가 독일보다는 프랑스에 적합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다시 파리로부터 시작하여 오를레앙Orleans - 투르Tours - 보르도Bordeaux - 비아리츠 Biarritz
스페인의 이룬Irun - 도노스티아Donostia - 비토리아Gasteiz - 부르고스Burgos - 바야돌리드Valladolid - 살라망카Salamanca
포르투갈의 비야 포르모스Vilar Formoso - 코임브라Coimbra - 리스본Lisboa
전체 경로로 보면 이렇다.
총 2400km정도, 서울에서 부산을 통상 400km로 잡는 걸 생각하면 굉장한 거리다.
<약스포주의>
포털들에서 찾아보니 영화와 책 모두 8.5점대의 준수한 점수를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영화가 원작의 케릭터를 굉장히 잘 살려 섭외했다고 생각하나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 희생된 부분, 그러니까 생략된 캐릭터나 사건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영화의 말미에 아마데우와 에스테파냐가 닿은 바닷가가 흔히 표현되는 '먼 곳'을 찾은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그전에 그들이 읽었던 『우 마르 테네브로주o Mar tenebroso(두려움을 일으키는 암흑의 바다)』에 대한 설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데우에게 '세상의 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그레고리우스가 그의 족적을 따라 가는 여행에서 느끼고 기억해내는 세밀한 감정의 미구현이 아쉽다. '문두스Mundus'가 '세상의 끝'을 밟고 그곳에서 만나는 단순하지만 이야기 전체을 꿰뚫는 대답의 과정 말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보여지는 부분이 중요했던 모양인지, 에스테파냐를 만나게 되는 포르투갈 반독재 '카네이션 혁명'의 시기의 아마데우를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로 그려놓았지만 사실 책에서는 28년의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데우의 졸업식은 그가 왜 불경한 사제, 열일곱의 우상파괴자로 불렸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 이 졸업 연설문을 읽고 있으면 작가가 이 연설문을 위하여 이야기를 엮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까지 생각이 들 정도다.
가족으로부터, 신으로부터의 침묵에서 느꼈을 상상도 못할 그의 고독, 외로움, 한기. 침묵으로 강요되는 압박과 그로인해 내가 가보지 못하고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것으로 떠나고싶었던 이와 우연한 계기로 떠나게 된 이의 이야기.
인간의 심리와 외적인 사건, 폭풍의 관계 사이에서 영화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한 인간의 내밀한 내적인 고뇌를 포기함으로써 영상물로써의 외적인 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누적관객수는 8만명 정도라고 되어있다.
그레고리우스가 스위스의 베른을 떠나 학교의 교장에게 남기던 편지에 인용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소절을 남기면서 글을 마친다.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P.s
https://www.google.co.kr/maps/@43.753255,-4.0026015,6z/data=!3m1!4b1!4m2!6m1!1szGfmsrpWVE1o.kLstFePSU1bw
구글 맵에 재미있는 기능이 있어서 활용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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