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을 불어가는 바람 소리가 휘익 하고 들리더니 창문이 덜컹거렸다. 바람이 거세지는 모양이었다. 창밖의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사람도 나무처럼 일 년에 한 번씩 죽음 같은 긴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깨어나 연둣빛 새 이파리와 분홍빛 꽃들을 피우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 p.24
검은 색깔의 대형차들이 즐비한 곳에서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검은 가방을 들고 분주히 내려 들어서고 있었다. 변호사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들도 죽는다. 서두르지 않아도 백년 후엔 이곳에 오늘 있었던 사람 중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서두르려고 하는 것이다. 어서 죽여야 한다고... 아니 큰오빠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화를 낼 것이다. 그건 집행일 뿐이야, 하고. - 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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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 의해 꽂혀져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만 있던 책, '남들과 대화할 수 있는 책'을 읽는 것을 염두하여 독서하기로 하여 읽게 되었다. 2005년 4월에 초판, 130쇄를 2006년 10월에 찍었다고 되어 있기에 찾아보니 동명의 영화가 06년 9월에 개봉했다고 한다. 새삼 영상매체의 힘을 실감한다.
유복한 가정의 막내딸이자 젊은 교수인 '문유정'은 엄마가 늘 자신과 꼭 닮았다고 하는 고모이자 이름보다 '모니카'라는 세례명으로 불리는 수녀의 요청에 의해 천주교 종교위원이라는 자격으로 교도소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이문동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사형수 '정윤수'를 만나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실은 '성장소설이다'라고 쓰려다가 습관적으로 쓰게 되는 표현인가 싶어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대두분의 소설은 성장소설이 아닌가 한다.
삶이 그렇듯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고 헤어지게 되는 과정 속에서 방향이야 어떻건 결국 성장을 겪는다면, 삶에 기반하고 투영인 소설 역시 그렇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책의 표지에 장식된 추천사에 얼마전 타계하신 신영복 선생님도, 본문에 등장하는 '임기 내 사형집행을 않겠다 했던 사형수였던 대통령 당선인'도 공교롭게도 모두 장기복역수 였으며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은 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책을 덮는 순간까지 생각하게 했던 사형제에 대한 생각에 무게가 싣기는 것 같다.
2014년이던가. '참으면 윤일병 터지면 임병장'이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지게 했던 총기난사와 무장탈영 사건의 임병장이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1997년 12월 30일 23명 이후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지금까지 총 60명의 사형수가 생존해있었다고 하는데, 그는 61번째가 되었다.
P.S. 영화를 찾기 위해 뒤적이는데, 강동원은 10년 전과 같은 모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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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은 '푸른숲'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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