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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태백산맥』, 조정래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먼저 읽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로 자극을 받아 읽기 시작한 책. 벌교에도 다녀왔다는 이야길 듣고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최근에 이야기를 해보니 4권까지만 읽고 다녀왔다고 한다.


  이야기 초반의 무대이면서 등장 인물들 대부분의 고향으로서 전남 '벌교'가 등장하는데, 인물들의 캐릭터 성이나 도시에 묘사 때문이라도 '벌교'에 간다고 하면 '태백산맥' 읽었냐는 소리가 당연스럽게 나오는 듯 하다. 소설은 48년 여순사건 에서 시작하여 이후의 굵직굵직한 사건들, 이를테면 김구 피살, 남한 단독선거, 한국전쟁. 한강 인도교 폭파, 보도연맹 학살, 거창 양민학살 부터 휴전협정 조인까지의 일 들을 다양한 인물의 눈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는 그 길을 나서는 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이 세상 그 누구의 목숨이 죽음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목숨이 있는가. 그러나, 이 보편적 명제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건 죽음을 종교적으로 초월해서가 아니었다. 구체적인 자각으로 죽음을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이 추상적일 때 두려움은 생기고, 현실의 안위에 집착할 때 그것은 증폭되는 것이었다. 자각한 자의 죽음은 그것 자체가 행동이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각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각을 기피하는 자에게 역사는 과거일 뿐이며, 자각한 자에게 비로소 역사는 시간의 단위구분이 필요 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역사는 시간도, 사건도, 기록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저 먼 옛날로부터 저 먼 뒷날에 걸쳐져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인 것이다. 올바른 쪽에 서고자 한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으로 엮어진 생명체. 그래서 역사는 관념도, 추상도, 과거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뚜렷한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크는 것이다. 솥뚜껑 같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 역사는 크는 것이다. 솥뚜껑은 하나가 아니었다. 솥뚜껑은 수없이 많았다. 이제 자신도 그 뒤를 따라가는 하나의 솥뚜껑이고자 했다.

  

  빨치산 투쟁을 하던 인물이 당의 노선 변경에 따라 산을 내려가면서 하게 되는 생각. 몹시 뒷 부분에 해당하므로 인물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솥뚜껑은 그가 산에서 만난 빨치산의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다시피 사회적 하층민에 속하는 계급 출신. 



  이 소설이 8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혹시나 찾아보니 작가인 조정래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도 받았다고 한다. 결과는 2005년에 무혐의 처분. 2000년 대에 까지 문학이 사상적인 이유로 저촉될 수 있다는 게 정상인가 싶다가도 오히려 작금의 현실에서 더 출간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금 답답함을 느낀다.


  사실 다른 이유보다도 10권이라는 권 수의 압박 떄문에 시도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야금야금 읽다보니 다 읽게 되었다. 다른 작가의 전집을 구매했다가 반 정도 읽고 손 못 대고 있는 상황을 이미 겪은 바, 이번엔 한 권 씩 보면서 사 모으기로 해보았더니 여러모로 효과가 좋다. 가장 큰 효과는 남은 권 수가 눈에 보이질 않으니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과 , 둘째는 집-도서관을 오가는 단순한 동선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셋트로 구매할 때 보다 비싸다는 점.


   분류 그대로 '큰 강과 같은' 소설을 뭐라 정리할 수 있을까. 다만 지금 여기로 까지 이어지는 큰 물 줄기가 '청산되지 못한 역사'라는 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답답하다. 하늘에 지금보다 더 겨울색이 짙어지면 벌교엘 다녀와야 하겠다.





태백산맥 세트 (전10권)
국내도서
저자 : 조정래
출판 : 해냄출판사 200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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