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하지만 내 최초의 사랑이 어떤 형태로 종말을 고할 것인지, 내가 희미하게나마 예감하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어쩌면 그런 예감이 몰고 온 불안이 내 쾌락의 핵심이었는지도 모른다.
- p. 75
지금은 그 출처를 정확하게 찾을 수가 없지만, 작년 즈음인가 신문에서 '자신이 동생애자인가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느냐' 하는 고민을 했다는 학생이 꽤나 많았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었는데, 요즘 '걸크러쉬'라는 신조어가 많이 쓰이는 현상을 생각해보면 정신의학자들은 확실히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조심할 것은 그 현상들이 '정신병'적이라는 표현은 아니라는 점이며, 병리학에서 진행단계별로 제각각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이 인간정신에 대한 동일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린시절 할머니의 과보호 아래서 길러진 유약한 주인공이 성(性)과 인간에 대한 고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 배경은 학생들은 해군기지나 비행기 공장 등으로 동원되는 것이 당연하며, 사이렌이 알려오는 폭격에 대한 공포로 얼룩져있는 1945년 전후의 일본 도쿄 근교다.
이렇게 내외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자라는 주인공은 아버지의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서양화첩에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를 보고 성적 흥분(발기)과 최초의 수음을 경험한다. 그 후 중학교에서 성경험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 연상의 동급생 오미近江를 만나 그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단정짓기에 이른다.
이것이 사랑이었을까? 일견 순수한 형태를 유지하며 그후에도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이런 종류의 사랑에도 그 나름의 독특한 타락이며 퇴폐가 갖춰져 있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랑의 타락보다 좀더 사악한 타락이었고, 퇴폐한 순결은 세상의 온갖 퇴폐 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쁜 퇴폐였다.
하지만 오미에 대한 짝사랑, 내 인생에서 최초로 만난 이 사랑에서 나는 참으로 아무런 사심 없는 육욕을 날개 밑에 감춰둔 작은 새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획득의 욕망이 아니라 단지 순수한 ‘유혹’ 그 자체였던 것이다.
- p.73
이 확신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친구인 구사노草野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의 여동생의 서투르고 어린 티가 나는 피아노 소릴 듣게 되면서 흔들린다. 구사노의 여동생 중 맏이인 소노코園子를 처음 소개 받는 주인공은 그녀의 맨다리를 보고 감동하지만 그것이 육욕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며, 자신은 여성에 대해 육체적인 욕망을 품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미화한다.
그러나 입대한 구사노의 면회를 가기 위해 그의 가족을 기다리던 기차역에서 소노코를 마주하며 그는 면회의 여정 동안 사랑인가 의심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고 순수한 소노코의 모습을 보며 '죄에 앞서는 회한'이라는 것이 있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이후의 줄거리는 소노코와의 관계에서 그가 어떤 것을 느끼고 자신을 어떻게 확신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전체적으로 내적인 묘사에 치중했고 그것에 성공한 소설이지만, 곳곳에서 당시 도쿄에 대한 묘사 역시 눈에 들어온다. 가령 총동원체제 하에 모든 것이 '성전'이라는 일념에 동원되고, 그 반작용으로 도시고 인간이고 모두 폐허가 되어있는 일본에 대한 비판 같은 것들말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그가 가족과 갔던 여름의 바닷가에서 혼자 남았을 때,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모습을 상상하다 무심코 보게 된 2차성징이 시작된 자신의 겨드랑이를 보며 수음했던 장면이다. 이미 청년의 모습을 갖추고 있던 동급생 오미의 모습을 보며 급작스럽게 질투를 느꼈던 그가 이 사건을 계기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이란 서로 완벽하게 닮고 싶어하는 환상, 환영인 것이 아닐까 고민한다.
공습은 남들보다 훨씬 무서워하면서 동시에 나는 어떤 달콤한 기대로 죽음을 기다려 마지않았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내게는 미래가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다. 인생은 처음부터 의무관념으로 나를 조여왔다. 내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면서도 인생은 나를 의무 불이행이라는 이유로 마구 힐책하는 것이었다. 이런 인성을 죽음으로 골탕 먹인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전쟁 중에 유행하던 죽음의 교의(敎義)에 나는 관능적으로 공감했다. 내가 만일 ‘명예로운 전사’를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풍자적으로 생애를 마감한 것이 되고, 무덤 안에서 내가 지을 미소의 씨앗은 영원히 시들이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사이렌이 울리면 누구보다도 빨리 방공호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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